[진순희 시인의 디카시 26] <모자를 쓴 남자들>_익명성의 플랫폼에서

 

 

야니스 가이티스(Yannis Gaitis)의 『Men in Hats』를 오마쥬 해 AI로 생성한 것임을 밣힙니다.

 

 

 

 

-「붉은 형상과 나를 잃은 자리」

 

그리스의 한 달은 풍경보다 사람이 더 깊이 스며드는 시간인가 봅니다.

여행 중인 친구가 보내온 한 장의 사진.

아테네 라리사 역 플랫폼에 붉은 형상들이 나란히 앉아 있었습니다.

‘여기 어디야?’ 물으니

친구는 카톡 창에 웃음 표시 하나를 남기며 답했습니다.

“실제 앉을 수도 있어ㅎㅎ”

 

 

모자는 있지만, 표정은 지워진 얼굴들.

형상은 다르지 않고, 시선은 없고, 말도 없습니다.

복제된 존재들이 나란히 침묵을 나누는 풍경화처럼 보였습니다.

그 사이에 앉아 있다면—나는 나일 수 있을까.

낯선 형상 속에서, 나 아닌 나를 구별해보려는 감각이 밀려왔습니다.

 

 

 

그 순간 떠오른 이름은 에드워드 호퍼.

그의 고독한 인물들처럼,

이 형상들도 말없이 시선을 비켜가며

보는 사람에게 질문을 던지고 있었습니다.

‘당신은 누구입니까?’가 아니라

‘당신은 언제부터 그들 속에 섞여 있었습니까?’

 

 

 

사진 한 장과 말 한마디가

제 안에 긴 여운을 남겼습니다.

지워진 얼굴들 틈에서 나는 누구였는지,

나는 지금도 나일 수 있는지—

그 자리에서 시가 시작되었습니다.

 

 

“복제된 얼굴 사이에서,
자신을 알아보는 눈빛 하나가 시대의 저항이다.”


-진순희 어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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