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목차
『피라미드』 – 복종은 권력의 본질인가?
「필론의 돼지」 – 무지와 혁명 사이의 중립성
복종과 무지, 두 금서가 만나는 지점
독서토론 논제: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보셨나요?
지금 우리의 금서는 무엇인가
『나쁜 책 – 금서기행』(김유태, 글항아리, 2024)은 단순한 검열의 역사 기록이 아니라, 그 이면에 감춰진 질문과 저항 ,시대정신을 되묻습니다. “이 책은 금서로 불렸던 작품들을 통해, 우리가 무엇을 말하지 못했고, 무엇을 두려워했는지를 성찰하는 문학비평과 시대비평이 교차된 깊이 있는 비평서입니다.
독자에게는 단순한 문학 해석을 넘어, 지금 이 시대에도 여전히 살아 있는 텍스트로서 금서를 마주하게 만듭니다.
이번 글에서는 독서토론 논제를 중심으로 이즈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와 이문열의 「필론의 돼지」를 분석하고,
각각의 메시지가 어떤 방식으로 오늘의 독자에게 도달하는지를 함께 살펴보고자 합니다.
1. 『피라미드』 – 복종은 권력의 본질인가?
이즈마일 카다레의 『피라미드』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하되, 20세기 알바니아 독재 체제를 우회 비판하는 정치우화입니다. 즉위한 파라오 쿠푸는 “어쩌면 피라미드를 만들지 않을 수도 있다”(p.196)라고 선언하지만, 대신들은 즉시 반대합니다. 그들에게 피라미드는 선택의 문제가 아닌, “반드시 시행되어야 할 과업”(p.197)이기 때문입니다.
세 가지 상징적 건축 선택지
끝없는 구멍 파기 → 무한성 (목적 없는 고통)
성벽 쌓기 → 유한성 (결과가 분명함)
피라미드 건설 → 유한성과 무한성의 결합 (계속 반복되는 구조)
‘피라미드’는 단순한 무덤이 아니라 권력을 시각화하고 제도화한 구조물입니다. 왕조는 바뀌지만, 피라미드는 반복되고, 시민은 끊임없이 복종의 노동에 투입됩니다. 파라오조차 이 시스템에서 자유롭지 못하며, 체제가 인간을 규정짓는 아이러니가 이 작품의 핵심입니다.
2. 「필론의 돼지」 – 무지와 혁명 사이의 중립성
이문열의 중편소설 「필론의 돼지」는 유신 말기에서 5공 초기에 걸친 정치적 혼란의 시대를 배경으로 합니다.
이 작품은 발표 당시 양 진영 모두에게 비판받았습니다.
보수 진영은 작품이 전두환 정권을 풍자했다고 판단했고,
진보 진영은 광주 시민을 폭도로 묘사했다며 강한 반발을 보였습니다.
결국 이 소설은 어느 쪽에도 환영받지 못한, 모두에게 불편한 진실을 던지는 문제작이 되었습니다.
작가는 자신이 의도한 바를 이렇게 말합니다.
한 인간이 하늘에서 내린 파도를 어찌 막겠나. 소설가는 하나의 방향만을 겨냥할 수 없는 존재”(p.181)
이 발언은 작가가 특정 이념의 편에 서기보다, 혼란의 한가운데서 인간의 내면을 성찰하려 했다는 입장을 보여줍니다.
중심 질문: “무지와 혁명은 어떻게 구별될 수 있는가?” (p.180)
이 작품이 던지는 핵심 질문은 바로 이것입니다.
혁명이 언제나 정당한가?
저항은 무지로부터 비롯된 것일 수도 있는가?
혹은 무지한 대중이 저항을 혁명이라 착각하는 것은 아닌가?
이문열은 이 복잡한 질문을 정면으로 다루되, 명확한 판단이나 입장을 제시하지 않습니다.
그는 이념보다는 ‘알지 못하는 인간’, ‘판단할 수 없는 인간’의 조건을 문학적으로 묘사합니다.
인물 해석: ‘그’의 체념과 소주병
작품 속 인물 ‘그’는 결국 소주병을 받습니다.
이 장면은 단순한 패배나 비겁한 타협으로 읽히기보다는, “무엇이 진실인지조차 알 수 없는 시대의 내면적 고뇌”를 은유하는 장면으로 볼 수 있습니다.
그는 알고도 외면한 것이 아니라, 확신할 수 없기에 침묵하고 체념한 인물입니다. 이는 독재나 폭력 앞에서의 복종과는 결이 다른, ‘무지 속에 갇힌 인간의 내면’을 보여주는 결정적 장면이라 할 수 있습니다.
정리하면 「필론의 돼지」는 특정 정치 세력의 선전이나 비판이 아니라, 혼란과 단절의 시대 속, 인간 내면의 균열을 그린 작품입니다. 이문열은 이 소설을 통해 ‘혁명’과 ‘무지’라는 개념을 단순히 윤리적으로 구분하지 않고,
그 경계가 얼마나 흐릿하고 판단하기 어려운가를 보여줍니다.
작품 속 인물의 체념은 지식인의 외면이 아닌, 판단 불가능성에 대한 성찰입니다.
3. 복종과 무지, 두 금서가 만나는 지점
『피라미드』와 「필론의 돼지」는 시공간도 다르고 역사적 맥락도 전혀 다릅니다.
하나는 고대 이집트를 배경으로 한 정치우화이고, 다른 하나는 1980년대 한국의 정치 현실을 비추는 문제작입니다.
그러나 이 두 작품은 한 가지 공통된 질문에 맞닿아 있습니다.
“인간은 어떻게 체제에 순응하며, 그 안에서 어떤 선택을 감행하거나 포기하는가?”
이것은 단지 정치적 맥락의 질문이 아니라, 존재론적 질문이기도 합니다.
『피라미드』는 권력이 어떻게 인간의 삶을 반복 가능한 구조로 만들고, 복종을 체계화하는지를 보여줍니다. 피라미드는 단지 무덤이 아니라 권력의 시간표이며, 지속 가능한 억압의 구조물입니다. 이 작품에서 복종은 명령에 의한 굴복이 아니라, 체제가 요구하는 자연스러운 태도로 그려집니다. 무서운 것은 그 복종이 강제만이 아닌, 내면화된 선택처럼 보일 수도 있다는 점입니다.
반면 「필론의 돼지」는 복종보다는 무지와 체념의 문제를 다룹니다. 이문열은 작품 속 인물들이 진실을 알지 못하거나, 알아도 말하지 못하거나, 말할 수 있어도 결국 실천하지 못하는 인간의 내면을 조명합니다.
이 무지는 단순한 무식함이 아니라, 지식과 감각이 마비된 상태, 혹은 진실과 허위의 경계조차 희미해진 사회에서 인간이 취할 수밖에 없는 생존 방식으로도 읽힙니다.
이 두 작품은 따라서 다음과 같은 메시지를 공유합니다:
▶ 복종은 외부의 강제가 아니라 체제 내면화의 결과이며,
▶ 무지는 무능함이 아니라, 선택 불가능한 시대의 비극이라는 점입니다.
『피라미드』에서는 파라오조차 시스템의 명령을 거스를 수 없습니다.
「필론의 돼지」에서는 소주병 하나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는 체념의 순간이 그려집니다.
복종이든 무지든, 인간은 그 상황 속에서 자유의지와 윤리적 책임 사이에서 끊임없이 흔들립니다.
이렇게 보면 두 작품은 같은 질문으로 수렴됩니다.
“나는 지금 어떤 체제 안에서 살고 있는가?”
“나의 선택은 진짜 내 의지인가, 아니면 이미 구조화된 복종인가?”
“침묵은 나의 한계인가, 사회의 요구인가?”
오늘날 우리가 겪는 사회적 피로감, 반복되는 시스템, 말할 수 없는 분위기 역시 이 금서들이 말했던 질문들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문학은 시대를 벗어난 진실을 품고 있고, 두 금서는 그 진실을 가장 민감한 방식으로 드러내며 우리로 하여금 스스로를 다시 묻게 만듭니다.
4. 독서토론 논제: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보셨나요?
1) 『피라미드』 속 세 가지 건축 선택
무한성의 구멍, 유한성의 성벽, 유한성과 무한성을 동시에 담은 피라미드는 단지 건축 기술의 차이가 아니라,
복종을 어떤 방식으로 구조화하고 반복할 것인가를 보여주는 체제의 통치 전략으로 해석할 수 있습니다.
파라오조차 이 시스템의 주체가 아닌 피라미드에 종속된 존재로 묘사된다는 점에서, 오늘날 우리가 속한 조직, 국가, 사회 제도 역시 개인을 시스템화하는 방식과 닮아 있는 건 아닐까요?
2) 「필론의 돼지」 속 ‘무지’
여기서 말하는 무지는 단순히 ‘모름’이 아니라, 말할 수 없음, 판단할 수 없음, 선택할 수 없음으로 이어지는 인간 존재의 본질적인 한계를 드러냅니다. 진실을 알 수 없는 시대, 옳고 그름조차 불투명한 현실 앞에서 ‘그’는 결국 소주병을 받으며 침묵과 체념 사이의 인간적 선택을 보여줍니다.
3) 여러분은 이 부분을 어떻게 보셨나요?
복종이 제도화된 구조로 반복되는 『피라미드』 속 세계에서, 우리는 지금 무엇에 익숙하게 순응하고 있지는 않나요?
이문열의 중립적 서사 태도는 비겁함일까요, 아니면 어느 것도 단정지을 수 없는 시대에 대한 정직한 응시일까요?
무엇보다, 지금 우리가 속한 사회는 어떤 피라미드를 반복하며, 어떤 무지를 견디며 살아가고 있는 걸까요?
5. 지금 우리의 금서는 무엇인가
이즈마일 카댜레의 『피라미드』는 반복되는 복종의 기계장치를, 이문열의 「필론의 돼지」는 혼란 속에서 진실을 말하지 못하는 인간의 고뇌를 드러냅니다. 이 두 작품은 어떤 시대가 어떤 책을 두려워했는가를 말해주는 동시에,
오늘날의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는 듯합니다:
당신은 지금, 어디에 복종하고 있나요?
어떤 진실 앞에서 침묵하고 있나요?
『피라미드』 속 파라오처럼, 우리는 체제를 주도하는 듯하지만 실은 시스템에 길들여진 존재일 수 있습니다.
「필론의 돼지」의 '그'처럼, 우리는 알면서도 말하지 못하거나, 확신할 수 없어 침묵 속에 체념하는 존재일 수도 있지요. 금서는 단지 읽지 못하게 금지된 책이 아니라, 읽는 것 자체가 권력이 불편해하는 질문이 되는 책입니다.
금서란, 결국 말해야 할 것을 말한 책, 혹은 아직은 말할 수 없는 진실을 품은 책인지도 모릅니다.
문학은 시대를 비추는 거울이자, 우리 내면에 질문을 던지는 목소리입니다. 금서는 그 조용한 목소리가 시대의 소음을 뚫고 끝까지 살아남은 흔적입니다.
그렇다면, 지금 우리의 시대는 어떤 책을 ‘나쁘다’고 부르고 싶어 할까요?
그리고 우리는, 그 책을 읽을 준비가 되어 있을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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