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한다는 착각, 이해하려는 노력
– 타인을 아는 것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목 차
- 타인을 ‘이해했다’는 말의 무게
- 닐의 애도와 탐색: 엘리자베스 핀치를 향한 헌사인가 왜곡인가
- ‘불완전한 이해’를 넘어선 인간적 존중
- 줄리언 반스가 전하는 “다시 읽기”의 윤리
-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이해한다는 착각, 이해하려는 노력
– 타인을 아는 것의 불완전성에 대하여
“우리는 누군가를 얼마나 잘 안다고 말할 수 있을까?”
한 사람을 몇 개의 형용사로 정리해 말하는 순간, 우리는 어쩌면 그 사람을 이해하기보다 단순화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누군가를 온전히 이해한다는 일은 가능한 일일까, 아니면 애초에 도달할 수 없는 착각일까.
줄리언 반스의 신작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이러한 질문을 품은 소설이다.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두 번의 이혼과 내면의 공허를 안고 살아가던 중년 남성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라는 특별한 교수를 만나고 20여 년간 사유적 관계를 이어가는 이야기다. 그녀의 갑작스러운 죽음 후, 닐은 남겨진 노트를 정리하며 그녀의 삶을 회고하고, 로마 황제 율리아누스를 주제로 한 미완성 에세이를 완성하려 한다. 그리고 이 과정에서 ‘한 사람을 이해한다는 것’의 불가능성과 필연적인 자기투사의 한계를 마주하게 된다.
저자 줄리언 반스는 『예감은 틀리지 않는다』로 2011년 맨부커상을 수상한 이래, 영국 문단에서 가장 지적이고 아이러니한 작가로 손꼽힌다. 역사, 철학, 기억, 회고와 같은 주제를 집요하게 탐구해온 그는 이번 작품에서 ‘이해’라는 주제를 오롯이 한 인물과의 관계 안에서 녹여낸다.
겉보기엔 조용하고 단단한 이야기지만, 읽을수록 층위가 깊어지며 독자의 생각을 뒤흔든다.
이 글은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를 통해 던져지는 질문—“정말로 타인을 이해할 수 있는가?”에 대한 독서의 사유를 풀어보는 시도다. 이해의 착각에서 이해하려는 노력으로, 독자의 위치도 변화되어야 하지 않을까.
1. 타인을 ‘이해했다’는 말의 무게
“나는 저 사람을 알아.”
이 짧은 문장은 의외로 많은 것을 생략하고 있다. 상대가 가진 성장 배경, 과거의 상처, 현재의 갈등, 생각의 변화를 우리는 과연 어느 정도까지 알고 있는가?
“사람들은 우리가 우리 자신을 보는 방식과는 다른 방식으로 우리를 본다. 뭐, 사람으로 살려면 자기 역사를 잘못 알아야 한다.” (p.288)
줄리언 반스는 이 한 문장으로 자아와 타인의 이해에 관한 아이러니를 통렬히 짚는다. 인간은 결국 스스로를 온전히 인식하지 못하는 존재이며, 그렇기에 타인을 “정확히 안다"라고 말하는 것은 거의 불가능에 가깝다.
우리는 타인의 특정 순간, 특정 말, 특정 행동을 근거로 ‘그 사람’을 규정해버리는 경향이 있다. 스티브 잡스를 한 마디로 설명하자면 ‘천재적인 독재자’일까, ‘비전 있는 혁신가’일까? 그의 삶을 전기 한 권으로 요약할 수 있다 해도, 정작 그와 살았던 사람들은 각각 다른 잡스를 기억한다.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를 회고하는 것도 마찬가지다. 그는 자신이 핀치를 잘 안다고 믿고 있지만, 사실은 기억의 편집본을 가지고 있는 것에 불과하다.
2. 닐의 애도와 탐색: 엘리자베스 핀치를 향한 헌사인가 왜곡인가
엘리자베스 핀치는 닐에게 단순한 교수 이상의 존재였다. 그녀는 닐에게 철학을 가르치고, 생각하는 습관을 일깨운 유일무이한 ‘어른’이었다. 그녀의 수업은 단순한 지식 전달이 아닌 ‘사유의 전염’이었다.
그런 그녀가 세상을 떠나고, 닐은 유품과 노트를 정리하며 그녀의 삶을 글로 남기려 한다. 동시에, 생전 끝내지 못했던 율리아누스 황제에 대한 에세이를 완성하려 시도한다. 이것은 단순한 문학적 과제가 아니라, 애도의 한 방식이며, 핀치를 이해하고자 하는 닐의 몸부림이다.
하지만 이 회고는 점점 위태로워진다. 닐의 글은 핀치를 있는 그대로 드러내기보다는 닐이 보고 싶은 모습대로 재구성하고 있음을 독자도 점차 알아차리게 된다. 핀치는 복잡한 사람이고, 다면적인 인물이며, 한 줄의 설명으로 요약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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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기나 역사책은 말할 것도 없고 소설에서도 어떤 인물이 형용사 세 개로 줄어들어 깔끔하게 정리되는 게 보이면 그런 묘사는 늘 불신하세요.” (p.23)
이 문장은 곧 닐 자신에게도, 독자인 우리에게도 던지는 경고다. 타인을 정리하려는 순간, 우리는 이미 그 사람을 잃는다. 왜냐하면 그 순간부터 우리는 그 사람의 실제 모습이 아니라, 우리의 해석으로 고정된 이미지만을 보게 되기 때문이다.
3. ‘불완전한 이해’를 넘어선 인간적 존중
“일관된 서사란 것은 대립하는 판단들을 화해시키려 하는 것이기에 망상에 불과할지도 모른다.” (p.217)
이 구절은 닐의 시도에 대한 줄리언 반스의 냉철한 진단이자, 인간 이해의 한계에 대한 통찰이다. 실제로 사람은 ‘일관된 존재’가 아니다. 가령 넬슨 만델라는 평화의 아이콘이지만, 젊은 시절엔 무장투쟁을 주도하기도 했다. 그럼 그는 평화주의자인가, 급진적 반체제 운동가인가? 어느 하나의 이미지로 정리할 수 없는 존재가 바로 인간이다.
타인을 이해하려 하기보다 복잡함을 견디고, 다면성을 인정하는 것, 그것이 진정한 존중이며 깊은 관계의 시작이다.
4. 줄리언 반스가 전하는 “다시 읽기”의 윤리
추천사에서 소설가 김연수는 말한다.
“나는 마지막 페이지까지 단숨에 읽은 뒤 중얼거린다.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이 물음은 곧, "나는 엘리자베스 핀치를, 그리고 타인을 정말 이해한 것인가?"라는 자문으로 이어진다. 줄리언 반스는 우리에게 ‘다시 읽기’의 윤리를 제안한다. 다시 읽는다는 것은 단지 더 깊이 파헤친다는 것이 아니라, 다르게 읽는 용기, 과거의 나와 다른 시선으로 바라보는 태도다.
그것은 관계에도 적용된다. 과거에 미워했던 사람을 지금은 조금은 이해할 수 있게 되는 일. 어릴 적 어른의 말이 이해되지 않았지만, 이제는 다르게 들리는 경험. 그것이 바로 ‘다시 읽기’의 힘이다.
5. 그래서 나는 이 소설을 제대로 읽은 것인가?
결국 『우연은 비켜가지 않는다』는 독자에게 질문을 남긴다.
“당신은 타인을 이해하려고 애쓴 적이 있는가, 아니면 그저 단정하고 판단하려 했던 것은 아닌가?”
닐은 핀치를 이해하려고 노력하지만, 끝내 다다르지 못한다. 그러나 그 과정 자체가 의미 있다. 이해는 종착지가 아니라 끊임없는 시도이며, 한 사람과 머물려는 의지다.
우리는 모두 타인의 삶 앞에서 서툴 수밖에 없다. 이해하려는 시도는 종종 실패로 끝나고, 그 실패를 감당하는 태도에서 관계의 깊이가 시작된다. 닐이 엘리자베스 핀치를 완전히 이해하지 못했듯이, 누구라도 사랑하는 사람조차 온전히 안다고 말할 수는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해하려는 반복된 노력은 인간다움의 증거이며, 우리가 결코 포기해서는 안 될 자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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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와 관련해 한나 아렌트는 『칸트 정치철학 강의』에서 다음과 같이 말한다.
“판단은 타인의 입장에서
사고하는 능력이다.”
(Judging is thinking from the standpoint of everyone else.)
– Hannah Arendt, Lectures on Kant’s Political Philosophy (1982)
이 말은 판단력이란 단순한 지식이나 논리가 아니라, 공감적 사유의 능력이라는 점을 일깨운다. 나의 시야를 벗어나 타인의 시선으로 세상을 바라보는 태도, 그것이야말로 올바른 판단의 출발점이며, 관계의 윤리를 지탱하는 힘이다.
줄리언 반스는 이 소설을 통해 말한다. 타인을 단정적으로 이해했다고 믿는 ‘착각’을 경계하되, 그 착각을 자각한 순간부터 ‘이해하려는 노력’이 비로소 시작된다고.
우리는 엘리자베스 핀치를 완전히 알 수 없다. 하지만 그녀를 이해하고자 고군분투한 닐의 여정 속에서, 결국 우리 자신을 더 깊이 들여다보게 된다. 이해는 완성이 아니라 과정이며, 타인뿐 아니라 ‘나’와 관계 맺는 유일한 길이다.
한 문장 요약: 타인을 정리하는 순간, 우리는 더 이상 그 사람을 살아 있는 존재로 보지 않게 된다. 그래서 그를 '잃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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